RNA치료제, miRNA, siRNA, 아고넛, 유전자치료, 분자생물학, K바이오
병은 결국 단백질이 만든다고 합니다. 좀 더 정확히는, 특정 유전자가 과도하게 발현되면서 엉뚱한 단백질이 쏟아져 나오는 게 문제의 시작이지요. 저는 제 몸이 먹은 것들의 집합체라고 늘 생각해왔는데, 그 집합체가 엉켜버리는 이유가 유전자 수준의 오작동에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부터는 RNA 연구 소식을 허투루 넘기기가 힘들어졌습니다. 2025년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이 세계 최초로 아고넛 단백질의 활성화 과정을 밝혀냈다는 발표를 접하고서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치료제 설계의 패러다임이 달라지는 순간이라고 느꼈거든요.
아고넛 단백질, 드디어 열리다
RNA 치료제가 왜 중요한지 설명하려면 먼저 우리 몸이 단백질을 어떻게 만드는지부터 짚어야 합니다.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운 '중심원리(Central Dogma)'가 있지요. DNA → RNA → 단백질 순으로 유전정보가 흐른다는 법칙입니다. 여기서 DNA는 핵 안에만 머물기 때문에, 핵 밖의 단백질 공장인 리보솜까지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RNA가 맡습니다. 한마디로 RNA는 설계 도면의 복사본을 들고 뛰어다니는 메신저입니다.
그런데 이 메신저를 조절하면 단백질 생산 자체를 끄거나 줄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RNA 치료제의 핵심 개념입니다. 특히 마이크로 RNA, 즉 miRNA라는 물질이 주목받는데요. miRNA란 약 22개의 뉴클레오타이드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RNA 조각으로,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기능을 합니다. 쉽게 말해 "이 단백질은 지금 만들지 마"라고 명령을 내리는 신호 분자입니다.
그런데 miRNA 혼자서는 그 명령을 실행할 수 없습니다. 아고넛(Argonaute) 단백질과 결합해 RISC라는 복합체를 이뤄야 비로소 세포 안에서 작동합니다. RISC란 RNA-유도 침묵 복합체(RNA-Induced Silencing Complex)의 약자로, miRNA가 표적 전령 RNA(mRNA)를 찾아 분해하도록 이끄는 실행 기구입니다. 문제는 아고넛이 miRNA를 받아들이는 구체적인 과정이 수십 년간 베일에 싸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 연구 결과를 처음 읽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상자와 물건' 비유였습니다. 기존 통념은 "빈 상자(아고넛)를 먼저 접어두고 나중에 내용물(miRNA)을 넣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반대였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 김빛내리 단장과 서울대 노성훈 교수 공동 연구진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샤페론이라는 단백질이 아고넛을 열린 형태로 붙잡아두고, miRNA가 들어온 뒤에야 아고넛이 닫힌 완성 형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샤페론(chaperone)이란 세포 안에서 다른 단백질이 올바른 3차원 구조를 갖추도록 돕는 단백질로, 쉽게 말해 '단백질 조립 도우미'입니다.
물건이 있어야 상자를 접을 수 있다니, 제 경험상 이런 역발상이 과학에서 나올 때마다 개념 전체가 재편되더라고요. miRNA가 단순히 아고넛에 실려 가는 승객이 아니라, 아고넛이라는 기계 자체를 완성시키는 핵심 부품이었다는 이 발견은 RNA 치료제 설계의 방향 자체를 바꿉니다.
- miRNA: 약 22개 뉴클레오타이드로 이루어진 작은 RNA. 특정 유전자 발현을 억제
- 아고넛(Argonaute): miRNA와 결합해 RISC를 형성하는 단백질. 표적 mRNA를 분해
- 샤페론(chaperone): 아고넛이 올바른 구조를 갖추도록 돕는 단백질 조립 도우미
- RISC: miRNA + 아고넛이 만드는 유전자 침묵 실행 복합체
- 아고넛 성숙 복합체(AMC): 샤페론이 아고넛을 열린 상태로 잡아두는 중간 복합체

siRNA 설계, 이제는 시행착오 없이
이번 연구가 단순한 기초과학 성과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siRNA 치료제 설계에 직접적인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siRNA(small interfering RNA)란 특정 유전자의 활동을 선택적으로 차단해 질병 원인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막는 RNA 분자입니다. miRNA와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지만, siRNA는 인공적으로 합성해 치료 목적으로 주입하는 약물로 설계된다는 점이 다릅니다.
현재 FDA 승인을 받은 siRNA 치료제들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알닐람 파마슈티컬스(Alnylam Pharmaceuticals)의 Onpattro나 Amvuttra 같은 약물들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런데 제가 관련 리포트들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이 약들이 체내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천 가지 화학 변형 조합을 일일이 합성하고 검증하는 방식으로 개발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출처: BRIC 동향리포트). 말 그대로 경험칙에 기댄 시행착오의 반복이었던 것이지요.
이번에 아고넛이 miRNA를 결합하는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재현할 수 있게 된 건 그래서 의미가 다릅니다. 어떤 구조의 RNA가 아고넛과 잘 결합하는지, 어떤 변형이 안정성과 기능을 동시에 높이는지를 이제는 이론적 근거를 갖고 설계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김빛내리 연구단장이 "시행착오에 의존하던 RNA 치료제 설계에 분자적·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의학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실감했습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유전자 치료제는 신의 영역이라 불렸습니다.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되고 유전자 설계도가 열린 뒤로, 우리는 단백질이 아닌 그 전 단계인 mRNA를 표적으로 삼는 치료법을 개발했고, 이제는 그 mRNA를 조절하는 miRNA와 아고넛의 결합 원리까지 손에 넣은 셈입니다. 소화기관부터 신경계까지 몸 전체를 지휘하는 시스템의 근본 설계도를 한 장씩 해독해 나가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도 압니다. RNA 분자는 음전하를 띠기 때문에 세포 안 깊숙이 전달하기가 까다롭습니다. 간처럼 접근이 비교적 쉬운 장기 외에 뇌나 근육 같은 곳에 RNA 치료제를 보내려면 LNP(지질나노입자) 같은 전달 기술이 훨씬 더 발전해야 합니다. LNP란 RNA 약물을 지방 성분으로 감싸 세포막을 통과시키는 나노 크기의 운반체로, 코로나19 mRNA 백신에서 이미 그 가능성이 검증된 기술입니다. 제 경험상 새로운 기초 연구가 나오면 그 파급은 2~3년 뒤 치료제 개발 속도에 반드시 나타나더라고요. 이번 발견도 그런 흐름을 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miRNA와 siRNA는 어떻게 다른가요?
A. miRNA는 우리 몸 안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작은 RNA로, 여러 유전자의 발현을 동시에 조절하는 기능을 합니다. 반면 siRNA는 특정 유전자 하나를 정밀하게 차단하도록 인공 합성된 RNA로, 치료제로 설계해 외부에서 주입하는 방식입니다. 둘 다 아고넛과 결합해 RISC를 형성한다는 점은 같습니다.
Q. 아고넛 단백질 연구가 치료제 개발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A. 지금까지 siRNA 치료제는 어떤 화학 변형이 효과적인지를 수천 가지 조합으로 일일이 실험해 검증하는 방식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이번에 아고넛이 miRNA를 받아들이는 분자 수준의 과정이 밝혀졌기 때문에, 어떤 구조의 RNA가 아고넛과 잘 결합하는지를 이론적 근거를 갖고 설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발 속도와 안전성 모두 개선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Q. RNA 치료제는 현재 어떤 질환에 쓰이고 있나요?
A. 현재 FDA 승인을 받은 RNA 기반 치료제는 주로 희귀 유전질환과 트랜스타이레틴 아밀로이드증(hATTR) 같은 대사질환 분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알닐람 파마슈티컬스의 Onpattro, Amvuttra가 siRNA 치료제의 대표 사례이고, 코로나19 예방에 쓰인 mRNA 백신도 넓은 의미의 RNA 치료 플랫폼에 포함됩니다. 암이나 신경계 질환으로의 확장은 전달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행 중입니다.
Q. LNP(지질나노입자)가 뭔가요? 왜 중요하죠?
A. LNP는 RNA 약물을 지방 성분의 나노 입자로 감싸 세포막을 통과시키는 운반체입니다. RNA는 음전하를 띠고 크기가 커서 세포 안으로 혼자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이 운반체가 필요합니다. 코로나19 mRNA 백신에서 LNP 기술이 대규모로 검증되었고, 이 경험이 siRNA와 다른 RNA 치료제의 전달 기술 발전에도 직접적인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결론
제가 이 연구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건 '시간'이었습니다. RNA 백신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3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아고넛 활성화 메커니즘의 규명은, 그 30년짜리 여정의 다음 챕터를 여는 발견처럼 느껴집니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결국 세포 안 어딘가의 신호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신호의 핵심 경로인 miRNA와 아고넛의 결합 원리를 이제는 분자 수준에서 볼 수 있게 된 것, 저는 이것이 단순한 기초연구가 아니라 앞으로 10년 치료제 설계의 지형을 바꿀 발판이라고 봅니다. 알츠하이머나 대사질환처럼 뚜렷한 원인 단백질이 있지만 기존 약물로 공략이 어려웠던 질환들, 이른바 '치료 불가능한 타깃(undruggable target)'에 조금씩 손이 닿기 시작한 것이니까요. 앞으로 siRNA 치료제의 임상 결과들을 주의 깊게 지켜볼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