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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더 많이 쓰인 사람일수록 치매에 더 취약하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사무실에 앉아 머리를 굴리며 살아온 저로서는 꽤 불편한 이야기였습니다. 게다가 아는 어르신이 갑자기 치매가 심해져 요양원에 모셨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였으니, 남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자주 쓰는 물건을 어디 뒀는지 기억이 안 나고, 계산이 예전보다 느려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부터 제 머릿속엔 한 가지 질문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 이게 치매의 시작인가, 아닌가.
치매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 — 발병 원인을 짚어보니
치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는 수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장 흔한 원인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의 경우,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뇌에 비정상적으로 쌓이면서 신경세포를 서서히 망가뜨립니다. 여기서 베타아밀로이드란 뇌 속에서 자연 생성되는 단백질 조각인데, 정상적으로는 분해되어야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응집되기 시작하면 독성을 띠게 됩니다.
제 어머니가 치매예방센터에 다니시는데, 두 달에 한 번씩 전문의 검진과 인지기능 테스트를 받으십니다. 처방받으신 약이 어떤 성분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증상 단계에 따라 항갈망제나 아세틸콜린 관련 약물이 처방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세틸콜린이란 기억력과 인지력을 관장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치매 환자에서는 뇌 내 이 물질의 농도가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알코올성치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15세 이상 1인당 연간 알코올 섭취량이 12.3리터로, 아시아 1위 수준입니다(출처: 메디컬뉴스). 알코올은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와 NMDA 수용체 기능에 영향을 미칩니다. 글루타메이트는 뇌의 흥분성 신경전달을 담당하는 물질인데, 알코올이 이 균형을 무너뜨리면 기억 상실과 정서 불안이 생깁니다. 술을 끊고 6개월이 지나면 회복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조기에 발견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농업인과 도시 사무직을 단순 비교하는 시각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좋은 공기, 신체 노동, 낮은 스트레스가 치매를 멀리한다는 논리는 직관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치매는 단일 원인이 아닌 유전·생활습관·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환이라 어느 한 요소만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 알츠하이머병: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응집이 주요 원인
- 알코올성치매: 글루타메이트·NMDA 수용체 교란으로 발생, 금주 후 회복 가능
- 혈관성치매: 뇌혈관 손상이 누적되어 인지기능 저하
- 공통점: 모두 조기 발견과 생활습관 개선이 예후를 크게 좌우
경도인지장애, 이 단계를 놓치면 진짜 늦습니다
일반적으로 치매는 노인의 전유물로 알려져 있지만, 50대 치매 뉴스를 접하면서 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문제는 치매 자체보다 그 앞 단계인 경도인지장애(MCI, Mild Cognitive Impairment)를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경도인지장애란 같은 나이대 평균보다 인지기능이 뚜렷이 낮지만 일상생활은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좀 자주 깜빡이긴 하는데 혼자 생활하는 데 지장은 없다"는 수준입니다.
보건복지부 '2023년 치매역학조사'에 따르면 경도인지장애 진단자는 2025년 298만 명에서 2033년에는 408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됩니다(출처: 중앙일보). 일반 노인의 연간 치매 전환율이 1~2%인 데 반해,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매년 10~15%가 치매로 진행됩니다. 이 숫자를 보고 나서 저는 어머니 검진 결과지를 훨씬 꼼꼼하게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최근 학계에서 주목하는 주관적 인지장애(SCI, Subjective Cognitive Impairment)의 개념입니다. 주관적 인지장애란 본인은 "기억력이 떨어진 것 같다"고 느끼지만 객관적 검사에서는 정상 범위로 나오는 상태입니다. 예전에는 단순한 불안 증세로 여겼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이 단계부터 치매 발병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보고됩니다. 저처럼 자주 깜빡이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라면, 이 단계에서 이미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은행잎추출물, 맨발걷기… 실제로 효과가 있는 건가
치매 예방에 좋다는 것들은 차고 넘칩니다. 저도 식품, 운동, 민간요법까지 죄다 들여다봤습니다. 그 중에서 최근 의료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 중 하나가 은행잎추출물(EGb761) 성분의 의약품입니다. 국내 원외 의약품 시장 데이터 서비스 KNDA에 따르면 은행잎추출물 제품의 월평균 매출은 2021년 49억 원에서 2025년 11월 기준 75억 원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단순히 잘 팔린다는 게 아닙니다. 순천향대 천안병원 신경과 연구팀이 아밀로이드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 검사 양성 판정을 받은 경도인지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은행잎추출물이 베타아밀로이드의 독성 응집, 즉 올리고머화(oligomerization)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올리고머화란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처음 뭉치기 시작하는 단계를 말하는데, 이 초기 단계를 차단하면 이후 플라크로 굳어지는 것을 막을 가능성이 생깁니다.
독일에서 2만 4천 명 이상을 평균 3.8년 추적 관찰한 연구에서는 은행잎추출물을 5회 이상 복용한 환자군에서 치매 진행 위험이 약 42% 낮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수치를 보고도 반신반의했는데, 어머니 담당 전문의가 이 성분을 처방에 포함시키는 걸 보고 나서야 신뢰가 생겼습니다.
반면 92세 노인이 2년간 맨발걷기로 말기 알츠하이머에서 회복됐다는 사례도 접했습니다. 감동적인 이야기인 건 분명합니다. 다만 저는 이 사례를 조금 다르게 읽었습니다. 맨발걷기 자체가 직접 치유한 것인지, 아니면 매일 30분 이상 야외 활동을 하고 아들이 끊임없이 말을 걸며 인지 자극을 준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운동과 사회적 교감이 인지기능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이니, 그 효과가 나타난 것 자체는 납득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깜빡깜빡하는 게 많아졌는데 치매 초기 증상인가요?
A. 단순 건망증과 치매 초기 증상은 구분이 필요합니다. 힌트를 주면 기억이 돌아오는 경우는 대부분 건망증이지만, 힌트를 줘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경우라면 전문의 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이 기준으로 어머니 상태를 판단하는 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Q.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으면 치매로 무조건 진행되나요?
A. 무조건은 아닙니다. 연간 10~15%가 치매로 전환되지만, 나머지는 그 상태를 유지하거나 일부는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단계에서 치료와 생활습관 개선을 시작하면 전환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은행잎추출물 처방도 이 단계에서 주로 이뤄집니다.
Q. 술을 조금만 마시면 오히려 치매를 예방한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A. 소량의 알코올이 HDL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인슐린 민감성을 개선해 방어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일부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소량이라도 뇌 볼륨이 줄어든다는 연구도 존재하며, 현재까지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제 경험상 "술은 조금은 괜찮다"는 말을 면죄부 삼아 음주를 정당화하는 건 위험한 해석이라고 봅니다.
Q. 치매 예방을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있나요?
A. 가장 근거가 탄탄한 것들은 사실 단순합니다.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 금연, 절주, 사회적 교류 유지, 수면 관리입니다. 여기에 경도인지장애 단계라면 전문의 상담 후 은행잎추출물 같은 의약품 처방을 병행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입니다. 저는 조기 검진 주기를 정해두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치매는 막연히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단계를 알면 대응이 가능한 질환이라는 걸 이번에 공부하면서 새삼 실감했습니다. 제가 직접 어머니 검진에 동행하고 처방 내용을 들여다보면서 느낀 건, 조기 발견이 전부라는 겁니다.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관리하느냐,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뒤 대응하느냐는 결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저 자신도 계산능력 저하나 건망증이 신경 쓰인다면, 일단 치매안심센터 조기검진부터 받아볼 생각입니다. 거창한 것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검진 주기를 정하고, 운동 루틴을 만들고, 술을 줄이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예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