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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자서전이 위인이나 정치인, 재벌 총수처럼 '알려진 사람'만 쓰는 거라고 오랫동안 믿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 버킷리스트 목록을 꺼내보니 맨 위에 "자서전 쓰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거창한 사료가 아니라, 나이 들어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내 손으로 내 궤적을 붙들어두고 싶었던 겁니다. 그게 자서전의 진짜 이유라는 걸, 쓰려고 앉아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자서전은 위인 전유물? 자전적 에세이로 시작하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자서전(autobiography)은 한 사람의 일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한 방대한 기록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autobiography란 'auto(나)' + 'bio(삶)' + 'graphy(기록)'의 합성어로, 직역하면 '내가 나의 삶을 쓴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막상 이 정의를 들이밀면 대부분 첫 줄부터 막힙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실제로 써보니 접근 방식을 바꾸는 게 먼저였습니다. '자전적 에세이'라는 개념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자전적 에세이란 인생 전체를 통으로 담으려 하지 않고, 기억나는 장면 하나를 가볍게 수필처럼 기록하는 방식입니다. 60대인 자신이 다섯 살의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도입부를 쓴 사례도 있는데(출처: 브라보 마이 라이프), 그 방식이 오히려 진짜 감정을 건드린다는 걸 읽고 나서야 납득했습니다.
1인칭 서술, 3인칭 서술, 과거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소설처럼 구성하는 방법, 뉴스처럼 핵심부터 꺼내는 방식까지 형식은 얼마든지 고를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손에 익다고 느낀 건 학창 시절 일기장 방식입니다. 날짜가 찍히고, 그날의 감정이 날것으로 남아 있는 형태 말입니다.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일단 기억 하나를 꺼내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 연보형: 시간 순서대로 굵직한 사건을 나열하는 방식. 구조를 잡기 쉬워 처음 시작하기에 좋습니다.
- 편지형: 과거의 나, 또는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 감정이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 사진스크랩형: 기념사진 아래 짧은 설명을 덧붙이는 방식. 글 쓰는 부담이 가장 적습니다.
- 독백형: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구어체로 쓰는 방식. 문체의 자연스러움이 강점입니다.
AI 활용, 기대만큼 편하지만 함정도 있습니다
챗GPT, 클로드, 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AI(Generative AI)를 자서전 쓰기에 활용하는 방법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생성형 AI란 사용자가 입력한 자료와 지시를 바탕으로 새로운 텍스트, 이미지 등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을 말합니다.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분명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도구입니다.
활용 방식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스마트폰으로 기억나는 이야기를 30분씩 나눠 녹음한 뒤 AI에 올리면 글로 옮겨줍니다. AI에게 인터뷰어 역할을 맡겨 질문을 받고 답하는 방식으로 장과 절을 쌓아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글쓰기와 다듬는 작업에는 챗GPT나 클로드가, 과거 영상이나 사진 같은 시각 자료가 많은 경우에는 제미나이가 유용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출처: HRD Korea 웹진).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AI가 만들어낸 초안을 보면 문장은 그럴듯한데, 제 말투가 없습니다. 감정을 실제보다 과장하거나 사실관계를 살짝 비틀어 놓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결국 AI는 초안을 뽑아주는 역할이고, 사실 확인과 문체 다듬기는 온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 즉 AI에게 어떤 맥락과 방식으로 질문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질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직접 써보고 난 후에야 실감했습니다.
AI에게 "기억나는 장소, 계절, 함께 있던 사람, 그날의 물건"을 구체적으로 넘겨주면 훨씬 생생한 문장이 나옵니다. 막연하게 "어린 시절 이야기 써줘"라고 하면 누구의 이야기인지 모를 글이 나옵니다. 재료가 구체적일수록 결과가 달라진다는 게 제가 직접 써보고 확인한 부분입니다.
육필 기록, 손이 기억하는 것이 따로 있습니다
대필이나 AI 녹음 변환 방식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쓰고 싶다는 생각, 저는 지금도 버리지 못했습니다. 육필(肉筆) 기록이란 타이핑이나 음성 변환 없이 손으로 직접 종이에 쓰는 방식을 말합니다. 디지털 방식보다 느리고 불편하지만, 손이 멈추는 자리에서 생각이 더 깊어지는 느낌은 분명히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블로그처럼 디지털 매체가 사진 첨부나 공유에 편리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우엔 화면 앞에 앉으면 오히려 표현이 정제되고 꾸며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반면 노트에 펜으로 쓸 때는 고칠 수가 없으니 날것 그대로 나옵니다. 그 날것이 자서전에서는 더 값진 재료입니다.
글쓰기 이론에서는 "Show, don't tell"이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뜻으로, "나는 슬펐다"라고 쓰는 대신 그 슬픔이 드러나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라는 서사 원칙입니다. 육필로 쓸 때 이 원칙이 더 잘 지켜지는 것 같았습니다. 손이 느리니 감정 설명 대신 장면을 붙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가설이지만, 제 경험으로는 그랬습니다.
물론 육필로 쓴 뒤 AI를 통해 디지털 텍스트로 옮기는 혼합 방식도 있습니다. 초고를 손으로 잡고, 정리는 AI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손에 맞는 방식을 찾는 게 먼저라는 게 제 결론입니다.
자서전이 두려운 진짜 이유, 그리고 원칙 하나
많은 분들이 자서전 쓰기를 계획하다 포기하거나 처음부터 엄두를 못 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쓰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직면하는 게 두려운 것입니다. 미화(美化)하고 싶은 충동과, 비화(悲話)로 스스로를 연민하고 싶은 충동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둘 다 변형이고, 둘 다 진짜 자서전의 적입니다.
서사이론(Narrative Theory)에서는 자서전이 기억의 재구성이라고 봅니다. 서사이론이란 이야기가 어떤 구조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지를 탐구하는 학문 분야입니다. 기억은 완벽하지 않고, 재구성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허구가 끼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서전이 100% 객관적일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 사실을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의 차이입니다.
저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 미화하거나 각색하지 않는다. 팩트를 담은 다큐(Documentary)처럼 쓴다. 다큐멘터리적 서술이란 감정적 판단 없이 사실과 장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이 원칙을 정하고 나니 방향이 잡혔습니다. 어떤 장면을 써야 할지, 어디서 끊어야 할지가 자연스럽게 결정됐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자서전의 마무리에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식의 자기반성이나 교훈으로 끝내는 것은 피하는 게 낫습니다. 판단과 평가는 독자의 몫입니다. 쓰는 사람은 그냥 보여주면 됩니다. 씁쓸했던 감정, 아직도 이해 못 한 선택, 그 자체로 끝내는 것이 오히려 더 솔직한 자서전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자서전은 얼마나 길어야 하나요? 분량이 정해져 있나요?
A. 일반적으로 자서전은 두껍고 방대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분량 기준이 없습니다. 자전적 에세이 형식이라면 30분 분량의 녹음 하나에서 시작해도 됩니다. 하루 한 장면씩 기록하다 보면 어느새 책 한 권 분량이 됩니다. 중요한 건 길이가 아니라 멈추지 않고 쌓아가는 것입니다.
Q. AI가 쓴 자서전 초안, 그냥 써도 되나요?
A. 제 경험상 그대로 쓰면 안 됩니다. AI는 사실을 과장하거나 쓴 사람의 감정을 부풀려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초안은 뼈대를 잡는 용도로 활용하고, 사실관계 확인과 자신의 말투로 다듬는 작업은 반드시 직접 해야 합니다. AI가 인터뷰어처럼 질문을 던지고 내가 답하는 방식이 가장 자연스러운 활용법이었습니다.
Q. 자서전을 쓰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이유가 뭔가요?
A. 대부분 처음부터 인생 전체를 담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에 다 쓰려 하면 분량도, 기억도, 감정도 감당이 안 됩니다. 일주일 단위로 기간을 정하고, 기억나는 장면 한 가지만 쓰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현실적입니다. 작게 쪼갤수록 포기할 가능성이 낮아집니다.
Q. 완성된 자서전은 어떻게 배포하나요?
A. 소량 제작의 경우 PDF 파일을 활용한 디지털 인쇄 방식이 가능합니다. 다만 전문적인 편집 디자인과 출판 과정은 별도로 거쳐야 합니다. 가족이나 지인 범위라면 제본 인쇄로도 충분하고, 블로그에 연재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자서전을 남기는 것도 현실적인 선택지입니다.
결론
자서전을 쓰는 행위는 과거를 향하지만, 그 과정 자체는 미래를 향합니다. 살아온 점들을 선으로 잇는 순간, 흩어진 기억에서 의미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지금 그 첫 줄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AI의 도움을 받되 초고의 주인은 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 거창한 업적 없이도 나만 아는 궤적을 기록할 권리가 있다는 것, 그걸 쓰려고 앉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기 어렵다면 버킷리스트 목록에 적는 것부터 해보시길 권합니다. 뇌 속 뉴런이 망각 쪽으로 기울기 전에, 기억이 선명한 지금이 적기입니다.
참고: 브라보 마이 라이프 - AI로 자서전 쓰기 강연 / HRD Korea 웹진 - 자서전 쓰는 법 / 자서전 글쓰기 강의 영상(YouTub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