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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 서서 턱 아래 살이 조금 더 늘었나 확인하는 아침이 늘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계단보다 엘리베이터를 먼저 찾게 된 건 어느 순간부터였을까요. 노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라, 이런 사소한 선택들이 쌓이면서 조용히 자리를 잡습니다. 건강수명 100세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말이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지금, 저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어떻게 늙어가느냐'가 훨씬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진시황도 못 막은 노화, 과학은 얼마나 왔을까
불로초를 구하러 신하들을 세계 각지로 보냈던 진시황도 결국 노화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 과학자들은 그 진시황이 꿈꾸던 일에 실제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볼수록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핵심은 텔로미어(Telomere)입니다. 여기서 텔로미어란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조금씩 짧아지는 염색체 끝 부분의 보호 구조물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신발 끈 끝에 달린 플라스틱 마개 같은 것인데, 이게 다 닳으면 세포는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노화의 생물학적 실체입니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스튜어트 올샨스키 교수와 텍사스 주립대 스티븐 어스테드 교수는 인간 최대 수명을 놓고 무려 5억 달러(약 6,000억 원)에 달하는 내기를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스테드 교수는 2150년에 인간이 150세까지 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내기가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최근 장수과학(Longevity Science) 분야의 흐름을 보면 완전히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장수과학이란 노화 자체를 하나의 조절 가능한 생물학적 프로그램으로 보고, 이를 늦추거나 역전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출처: 미국 국립노화연구소 NIA).
실리콘밸리의 AI 기업 에이지미카(Agemica)의 론존 내그 박사는 노화를 거대한 신호 처리 시스템의 오류로 봅니다. 전기공학자 출신인 그가 노화 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화합물을 AI로 찾아내는 연구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분야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 혁신이 온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100세 노인들이 공통으로 하는 것, 건강수명의 비결
86세에도 요가 강사로 활동하는 할머니, 90세에 그림을 그리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화가, 102세에 혼자 커피집을 운영하는 일본 할아버지. 이분들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제가 느낀 건 감동보다는 오히려 당혹감이었습니다. 저는 그분들 나이의 절반도 살지 않았는데, 지금 이 순간 내가 그분들보다 덜 활기차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세계 5대 장수마을로 꼽히는 중국 광시성 바마현은 인구 23만 명 중 100세 이상 노인이 80여 명 살고 있는 곳입니다. 연구자들은 이곳의 장수 비결로 좋은 자연환경, 균형 잡힌 식습관, 그리고 낙천적인 성격 세 가지를 꼽습니다. 특히 낙천적 성격, 즉 노화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7.5년을 더 오래 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들이 장수하는 직업이라는 연구 결과도 눈길을 끕니다. 지휘 자체가 전신 운동이 되는 데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정서적 활력이 장수의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입니다. 카라얀은 81세, 토스카니니는 89세, 스토코프스키는 무려 95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내가 지금 열정을 쏟아붓는 무언가가 있는가'를 진지하게 돌아보게 됐습니다.
건강수명(Healthspan)이란 단순히 오래 사는 기간이 아니라, 질병 없이 독립적이고 활력 있게 생활할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오래 사는 것과 건강하게 사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100세 노인들을 보면 이 둘이 함께 가고 있었고, 그 공통분모는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 몸을 계속 움직이는 습관 — 요가, 달리기, 축구 등 형태는 달라도 꾸준함이 핵심
- 배움을 멈추지 않는 태도 — 80세에 영어, 90세에 새 악기를 배우는 노인들
- 사람들과의 연결 — 가르치고, 나누고, 어울리는 사회적 활동
- 노화에 대한 긍정적 인식 — 7.5년의 수명 차이를 만드는 마음가짐
소식이 노화를 늦춘다는 게 진짜일까
저는 한동안 "많이 먹어야 힘이 난다"는 논리를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오래 건강하게 사는 노인들의 식단을 들여다보니 하나같이 조용히 적게 먹고 있었습니다. 86세 요가 강사 할머니는 밥 반 공기에 국 하나, 반찬 몇 가지가 전부였고, 102세 커피 장인 할아버지는 아침에 견과류 한 줌과 차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동물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부산대 정혜영 교수팀의 연구에서 자유롭게 먹인 쥐와 식이를 제한한 쥐를 24개월간 비교했더니, 제한 식이 쥐는 같은 나이의 일반 쥐보다 훨씬 젊어 보이고 내장지방도 현저히 적었습니다. 혈관과 콩팥 같은 장기의 노화 정도, 활성산소(활성산소란 세포를 산화시켜 노화를 촉진하는 불안정한 산소 분자를 의미합니다) 수치도 월등히 낮게 나타났습니다(출처: Nature — Caloric Restriction 연구).
실제로 소식을 오래 해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생체 나이를 비교한 검사에서도 차이가 명확했습니다. 과식을 일삼았던 사람은 실제 나이보다 수년 빠르게 노화가 진행된 반면, 소식을 해온 사람은 실제 나이와 같거나 오히려 젊게 나왔습니다. 제가 직접 이 데이터를 보면서 솔직히 예상보다 격차가 커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소식이 굶주림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전문가들은 일주일에 3~5회 운동을 병행하면서 채식 위주로, 자신의 활동량에 맞는 적정 칼로리를 찾아 먹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합니다. 기력이 없을 정도로 적게 먹는 건 오히려 역효과입니다. 저 역시 이 부분을 오해하고 있었는데, 요점은 '덜 먹는 것'이 아니라 '과식하지 않는 것'에 가깝습니다.
성공적노화, 결국 존엄성을 지키며 늙는 것
솔직히 털어놓자면, 저는 노화가 두렵습니다.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두렵고,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이는 자유를 잃는 것이 두렵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화 자체보다 디스에이징(Dis-aging), 즉 품위 없이 쇠락하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꾸준히 운동을 해온 83세 남성과 중년 이후 운동을 멀리한 82세 남성을 비교한 체력 검사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골밀도, 심폐지구력, 평형성, 척추 안정성 모든 항목에서 운동을 지속해온 쪽이 월등한 수치를 보였습니다. 단 한 살 차이지만 두 사람의 몸 나이 격차는 훨씬 컸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결과는 이론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선택들이 쌓인 결과라는 게 더욱 실감 납니다.
성공적노화(Successful Aging)란 신체 기능과 인지 기능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90세 화가 박정희 할머니가 가방 속에 항상 스케치북을 넣고 다니며 "아름다운 것만 생각하니 인생 전체가 아름다워진다"고 말하는 모습, 80세 최순남 할머니가 외국인 식당에 찾아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바로 그 성공적노화의 실제 장면이라고 저는 봅니다.
AI가 노화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시대가 온다 해도, 제가 사는 동안 진시황의 불로초가 현실화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웰에이징(Well-aging)의 방법들은 이미 충분히 명확합니다. 웰에이징이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드는 과정 전체를 건강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가는 태도를 뜻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오늘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것에 열정을 쏟느냐는 아주 평범한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웰에이징을 위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A. 운동, 소식, 사회적 활동 세 가지를 동시에 시작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중 하나만 고르라면 꾸준한 신체 활동입니다. 골밀도, 심폐지구력, 척추 안정성 모두 운동 여부에 따라 같은 나이라도 수년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무리한 운동보다 즐겁게 지속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먼저입니다.
Q. 소식을 하면 기력이 떨어지지 않나요?
A. 소식은 굶주림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활동량에 맞는 적정 칼로리를 채식 위주로 섭취하되, 과식을 피하는 것을 소식의 핵심으로 봅니다. 기력이 없을 정도로 적게 먹는 것은 오히려 노화를 가속시킬 수 있으니, 규칙적으로 끼니를 챙기면서 양을 조절하는 방향이 맞습니다.
Q. 성장호르몬 주사가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다고 하던데 맞아도 되나요?
A. 성장호르몬(Growth Hormone)은 단백질 합성과 지방 분해를 돕는 호르몬으로 60대가 되면 20대의 5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합니다. 결핍 진단을 받은 경우 치료 목적으로 투여할 수 있지만, 건강한 성인이 노화 방지 목적으로 맞는 것은 여러 부작용 위험이 있어 전문가들은 충분한 운동과 식습관 개선이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권고합니다.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 후 결정해야 합니다.
Q. 뇌 건강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은 뇌 혈류량을 늘려 신경세포 성장을 촉진하고 새로운 뇌세포 생성에도 도움을 줍니다. 여기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 지적 활동, 사람들과의 대화, 요리나 퍼즐처럼 손을 쓰는 활동이 뇌를 지속적으로 자극합니다. 전문가들은 이 세 가지를 꾸준히 병행하는 것을 치매 예방의 핵심으로 봅니다.
결론
웰에이징은 언젠가 준비해야 할 과제가 아닙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노화는 피할 수 없지만, 어떻게 늙어갈지는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결정합니다. 과학이 텔로미어를 늘리고 노화 세포를 되돌리는 날이 오더라도, 삶의 의미와 연결망이 없다면 늘어난 시간은 오히려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진시황의 불로초보다 오늘 걷기 30분을 선택하는 쪽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걸음이 쌓일 때 비로소 품격 있게 늙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건강수명 100세 시대,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계신지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KBS 다큐 — 웰에이징 건강수명 100세 시대 / 이지환 칼럼 — AI가 여는 150세 시대 (카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