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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장이었던 땅이 숲이 되고, 그 숲에서 국제 박람회가 열린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서울숲·성수동 일대에서 5월 1일부터 10월 27일까지 180일간 펼쳐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공간에 발을 들이는 순간, 어릴 적 친지 손을 잡고 갔던 경마장 풍경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그 넓고 평탄한 부지가 지금 이렇게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솔직히 꽤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선형정원이 바꾼 성수동 풍경
정원박람회라고 하면 담장 안에 꽃을 심어두고 입장권을 끊어야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번에 그 인식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성수역 개찰구를 나서는 순간부터 이미 박람회가 시작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뚝섬역 인근 교통섬에는 '성수 마중가든'이, 서울숲역 5번 출구 앞에는 선형정원 '빛의 띠'가, 팩토리얼 성수 건물 앞에는 '테라스 영'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선형정원(Linear Garden)이란 도로변이나 보행로를 따라 띠처럼 길게 이어지는 녹지 공간을 의미합니다. 넓은 부지가 필요한 전통적 공원과 달리, 도시의 좁은 자투리 공간을 촘촘하게 엮어낼 수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런 구성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서울시의 '5분 정원도시' 정책이 있습니다. 5분 정원도시란 시민 누구나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 안에 정원을 만날 수 있도록 도시 곳곳에 녹지를 확장하는 계획입니다. 쉽게 말해 굳이 공원을 찾아 떠나지 않아도 출근길 자체가 산책로가 되는 도시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실제로 이날 성수동 골목 곳곳에서 그 실험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출처: 서울미디어허브).
다만 생각해볼 지점이 있습니다. 선형정원이 아무리 촘촘히 깔려도, 이 공간에 접근하는 교통 수단이 제한적이라면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서울숲 일대를 걸으면서, 강 건너편에서 이 숲으로 이어지는 입체적인 연결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강버스 노선 확대나 케이블카 같은 도강 수단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정원도시의 실험장, 서울숲 안으로
박람회장 안에서 제가 가장 먼저 눈에 담은 건 꽃이 아니라 사람들의 표정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흙길을 걷고, 부모들은 QR코드를 스캔하며 정원 해설을 듣고 있었습니다. 보는 곳이 아니라 몸으로 겪는 곳이라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특히 AR 콘텐츠 체험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AR(Augmented Reality), 즉 증강현실이란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현실 공간 위에 디지털 정보를 덧입히는 기술입니다. 정원 한켠에서 스마트폰을 들이대자 식물의 생애 주기와 생태 정보가 화면 위로 펼쳐졌는데, 그 순간 정원이 단순한 배경에서 살아 있는 교육 공간으로 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각 자치구가 조성한 정원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동대문구 정원, 자운봉과 선인봉의 능선을 형상화한 도봉산 테마 정원, 은평한옥마을의 미감을 담은 은평구 정원까지, 각 지역의 고유성이 조경 언어로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단순히 꽃을 늘어놓는 것을 넘어, 지역의 문화 정체성을 공간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서울시 자치구 정원 전략이 꽤 구체적으로 진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공간은 단연 '포켓몬 시크릿 포레스트'였습니다. 숲속 곳곳에 포켓몬 캐릭터가 배치된 체험형 정원인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음에도 가족들이 끝까지 기다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캐릭터 IP(지식재산권)와 자연 생태 공간을 결합하는 방식이 낯설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정원을 어렵게 느끼는 시민들에게 진입 장벽을 낮추는 유효한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람회 주요 구성 한눈에 보기
- 작가정원·기업정원: 도시와 자연의 공존을 주제로 한 기획 전시 정원
- 도슨트 투어: 한복 가이드가 외국인 관람객에게 정원 문화를 해설하는 프로그램
- 체험 프로그램: '서울숲을 여행하는 돌' — 어린이가 조약돌에 그림을 남기는 생태 교육 프로그램
- AR 체험: QR코드와 증강현실로 식물·생태 정보를 입체적으로 탐색
- 정원 마켓·서로장터: 반려식물 구매와 지역 농특산물 장터가 동시에 운영
한강 활용, 숲의 미래를 묻다
서울숲을 가로질러 한강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숲이 강과 이어진다면 얼마나 달라질까. 너비 1000미터의 한강이 1000만 명의 삶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는 사실은, 제가 생각할수록 단순한 지리적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 박람회를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지점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서울숲은 사실상 강남과 강북 어느 쪽에서도 접근이 불편합니다. 지하철로 오는 방법이 주된 수단인데, 강 건너편에서 한강을 건너 직접 숲으로 연결되는 수상 교통 동선이 없습니다. 한강버스의 역할을 서울숲 인근 선착장까지 확대하거나, 강 건너편에서 숲으로 이어지는 케이블카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한강 수공간의 활용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수공간 녹화(Blue-Green Infrastructure)란 강과 수로 같은 물 공간을 생태 녹지와 연결해 도시의 기후·생태 회복력을 높이는 도시 설계 개념입니다. 육상 숲만큼이나 수공간에 조성하는 수생 식물 군락과 생태 수로가 도시 열섬 완화와 생물 다양성 보전에 기여한다는 사실은 이미 국내외 연구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습니다(출처: 서울시 공식 누리집).
과거 이 땅의 쓰임새를 돌이켜 보면, 경마장이 골프장이 되고 골프장이 숲이 된 변화는 결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누군가 "여기는 자연이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제는 숲과 강을 잇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저는 봅니다. 서울숲을 잠식하는 방향이 아니라 한강으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수공간 녹화와 접근 교통망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입장료가 있나요?
A. 서울숲 자체는 무료 공원이고, 박람회 일반 관람 구역도 별도 입장료 없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포켓몬 시크릿 포레스트 같은 일부 체험 구역은 유료로 운영될 수 있으니, 방문 전 공식 누리집에서 최신 정보를 확인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Q. 선형정원은 서울숲 안에만 있나요, 성수동 거리에도 있나요?
A. 성수역, 뚝섬역 인근 교통섬, 팩토리얼 성수 앞 등 서울숲 밖 성수동 도심 곳곳에 선형정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지하철역을 나오는 순간부터 박람회가 시작된다고 보면 됩니다. 박람회 기간 내내 상설 운영되는 공간이라 굳이 박람회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정원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Q. 아이랑 가면 뭘 할 수 있나요?
A. '서울숲을 여행하는 돌'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이 조약돌에 직접 그림과 메시지를 남기는 체험을 할 수 있고, 맨발로 흙길을 걷는 자연 체험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포켓몬 시크릿 포레스트도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 대기 줄이 생길 정도였으니, 오전 일찍 방문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Q. 박람회가 언제까지 열리나요?
A. 2026년 5월 1일부터 10월 27일까지 총 180일간 운영됩니다. 서울숲과 성수동 일대가 행사 장소이며, 주제는 'Seoul, Green Culture'입니다. 가을 단풍이 드는 시기에 방문하면 정원 풍경이 또 다를 것이라는 의견도 있어, 한 번 이상 다른 계절에 방문해보는 것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결론
경마장이 골프장이 되고, 골프장이 숲이 된 자리에서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단순한 도시 개발의 역사가 아니라 '무엇을 가장 소중한 공간에 두느냐'는 선택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센트럴파크가 있기에 그 주변 땅값이 올라가듯, 서울숲 역시 비워둠으로써 오히려 도시 전체의 가치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번 박람회는 정원을 '보는 시대'에서 '경험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다음 단계는 한강과 숲을 연결하고,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이 공간에 닿을 수 있도록 교통 접근성을 입체적으로 확충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10월 27일까지 시간이 있으니,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 한 번 더 서울숲을 걸어볼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