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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10명 중 7명 이상이 "부캐를 갖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1,202명을 조사한 결과입니다. 저는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아, 나도 그 70%구나' 싶었습니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적다는 걸 문득 깨달은 어느 날, 제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만 숨 가쁘게 달려왔다는 사실이 서늘하게 느껴졌거든요. 멀티 페르소나, 지금 왜 이 단어가 시니어 세대에게도 유효한지 생각을 풀어봤습니다.
부캐 만들기, 유행어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멀티 페르소나(Multi Persona)란 한 사람이 상황과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른 정체성을 표현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말합니다.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 즉 '가면'에서 비롯된 개념인데, 여기서 가면이란 숨김이 아니라 맥락에 맞는 자아를 꺼내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처음에는 MZ세대의 유행어처럼 들렸습니다. 온라인 게임에서 본캐릭터 외에 새로 만든 캐릭터를 부르던 '부캐'라는 말이 연예계로 번졌고, 유재석이 '유산슬'이라는 부캐로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면서 대중화됐죠. 그런데 이 흐름이 단순한 재미 이상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는 구조적 변화가 뒤를 받쳤기 때문입니다. 긱 이코노미란 프로젝트 단위로 계약을 맺고 일하는 비정형 노동 방식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하나의 직장이 아닌 여러 곳에서 역량을 팔며 수입을 만드는 구조입니다.
저는 이 변화가 시니어 세대에게 오히려 더 큰 기회라고 봅니다. 물론 "시니어에게 부캐가 무슨 소용이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체력이 떨어지고, 디지털 환경에 익숙지 않다는 이유에서죠.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오래 쌓아온 현장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는 20~30대가 몇 년 안에 만들기 어려운 자산입니다. 실제로 인사관리 분야 경력을 가진 한 시니어는 여러 스타트업과 파트타임 자문 계약을 맺어 다섯 곳 이상에서 월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유사한 업무를 반복하다 보니 오히려 집중화가 이뤄져 효율이 높아졌다고 합니다(출처: 시니어트렌드 칼럼, 다음).
부캐를 만들 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제가 직접 고민해봤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금까지 해온 일을 아주 사소한 것까지 전부 적어보는 겁니다. 16년 글로벌 기업 세일즈 경력자가 퇴직 후 6개월간 대리운전을 하면서 자신의 이력을 낱낱이 정리한 끝에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변신해 5년 만에 이전 직장 수준의 수입을 회복한 사례는, 이 과정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 직무 외 세컨드잡 능력자를 꿈꾸는 비율: 46.6% (사람인 조사, 2021)
- 쇼핑몰·카페 창업자: 17.2%
- 유튜브 등 인플루언서: 15.3%
- 음악·글쓰기 등 창작자: 14.4%
- 프로운동러: 8.9%
숫자를 보면 흥미롭습니다. 단순히 돈을 더 벌겠다는 게 아니라, 다른 역량과 취향으로 살고 싶다는 욕구가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저도 그 욕구를 느끼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어디 맘 편히 여행 한번 가본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틀 안에서만 살아왔거든요.
다중 정체성, 두려움보다 설계가 먼저다
멀티 페르소나가 트렌드가 됐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부캐를 꺼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변신하면 좋지 않겠냐"는 말은 쉽고, 실제로 어디서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는 막막합니다. 저도 솔직히 이 지점에서 한참 멈췄습니다. 크리에이터? 오지 탐험? 자연인? 상상은 해봤는데 막상 실행 앞에서 지금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한 미련이 발목을 잡더군요.
논문 '멀티 페르소나의 사례와 의미-부캐를 중심으로'는 이를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멀티 페르소나란 단순히 새 직업을 찾는 게 아니라 내면에 자리한 다양한 자아를 인정하고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실패 가능성을 허용하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출처: 브라보 마이 라이프, 이투데이). 여기서 핵심은 '실패 가능성을 허용'한다는 표현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부캐를 설계하려는 욕심이 오히려 시작을 막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객관화(Self-Objectifica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신을 제3자의 시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며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시니어 세대가 부캐를 설계할 때 이 과정이 특히 중요합니다. 효율과 고도성장을 위해 '해야 할 일'에 집중해온 세대라, '하고 싶은 일'을 구체화하는 역량이 상대적으로 덜 훈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였습니다. 스스로 물어본 적이 없었던 거죠.
"이전 경험과 주관만 고집하는 꼰대가 될 것인지, 수용과 공감을 통해 부캐를 키워나갈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라는 말에 저는 꽤 오래 걸렸습니다. 화려한 변신을 꿈꾸되, 지금 내 터전과 직업을 기반으로 부차적인 역할을 덧붙이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완전히 다른 가면을 쓰는 게 아니라, 본캐의 연장선에서 새 가면을 하나씩 추가하는 방식입니다.
다중 정체성을 설계할 때 도움이 되는 실천 순서를 제가 직접 고민하며 정리해봤습니다.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 지금까지 해온 일을 직무 단위가 아닌 역량과 경험 단위로 낱낱이 적어본다
- 그 중 반복적으로 잘 해왔던 것과 즐거웠던 것을 교차 확인한다
- 새로운 별명이나 닉네임을 붙여보는 것으로 심리적 진입 장벽을 낮춘다
- 블로그나 SNS에 꾸준히 기록하며 외부 반응으로 방향을 조율한다
- 막히면 우회하고, 실패한 부캐는 다음 부캐를 위한 데이터로 삼는다
제 지인들은 아마 제 변신 시도를 꽤 놀랍게 볼 겁니다. 그 예상되는 놀라움이 오히려 동력이 됩니다. 막히면 돌아가고, 새 가면을 쓸 때마다 그 자체를 작은 자축으로 삼을 생각입니다. 어떤 아바타를 꾸미든, 결국 나답게 사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니까요.
자주 묻는 질문
Q. 멀티 페르소나가 젊은 세대 얘기 아닌가요? 50~60대에도 유효한가요?
A. 젊은 세대의 트렌드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시니어 세대에게 더 실질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십 년간 쌓인 현장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는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려운 자산입니다. 여러 스타트업에 파트타임으로 자문을 제공하며 다섯 곳에서 수입을 올리는 시니어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Q. 부캐를 만들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A. 제가 직접 고민해본 결과, 가장 효과적인 출발점은 지금까지 해온 일을 역량 단위로 낱낱이 적어보는 것입니다. 직무 이름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왔는지를 쓰다 보면 자신만의 특화 영역이 드러납니다. 거기서 요즘 트렌드와 교차점을 찾으면 부캐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Q. 지금 직업과 터전을 그대로 두고도 부캐를 가질 수 있나요?
A. 가능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본캐를 완전히 버리지 않고 부캐를 추가하는 방식이 심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지속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업의 신뢰와 안정을 기반으로 두되, 그 옆에 새로운 역할을 하나씩 덧붙이는 방식이 시니어에게는 특히 유리합니다.
Q. 부캐를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어떡하나요?
A. 실패를 허용하는 것 자체가 멀티 페르소나의 핵심 개념 중 하나입니다. 논문에서도 이를 "실패 가능성을 허용하는 여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막혔을 때 우회하고, 그 실패를 다음 부캐의 방향을 잡는 데이터로 삼으면 손해 보는 시도란 없습니다. 후회하지 않는 게 목표라면, 시도 자체가 이미 절반의 성공입니다.
결론
멀티 페르소나는 거창한 변신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저는 이걸 '나라는 사람을 더 넓은 면적으로 사용하기'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좁은 역할에만 집중해 살아왔다면, 이제는 그 바깥쪽 면을 하나씩 열어보는 것입니다.
초고령사회 진입이 가속화되는 지금, 시니어 세대는 부모이자 자녀이자 조부모로서 이미 다중적 역할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관계'에서 하던 일들을 '업'의 관점으로 이동시키면, 다중 정체성은 이미 익숙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필요한 건 새로운 기술보다, 자기 객관화를 통해 지금 가진 것을 다시 보는 용기입니다. 어떤 가면을 쓰든, 그것이 나다운 길이라면 틀리지 않았습니다.
참고: 시니어트렌드 칼럼 (다음) | 브라보 마이 라이프, 이투데이 | 멀티 페르소나 뜻과 은퇴 후 다중 삶 (lifethe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