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성 난청, 어음분별력, 인지기능 저하, 보청기, 난청 치매, 청력검사, 난청 예방
저희 어머니가 TV 볼륨을 최대로 올려놓은 걸 처음 봤을 때, 솔직히 그냥 귀가 좀 어두우신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소리의 크기 문제가 아니라, 뇌가 소리를 해석하는 능력 자체가 떨어지는 것일 수 있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노인성 난청을 단순히 '귀가 나빠진 것'으로만 보다가 치매 위험까지 키울 수 있다는 사실, 저도 처음엔 전혀 몰랐습니다.

보청기
어음분별력 저하, 그냥 귀가 나쁜 게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난청이라고 하면 소리가 작게 들리는 것만 떠올리기 쉬운데, 제가 직접 어머니의 청력 문제를 챙겨보면서 실제로는 훨씬 더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바로 어음분별력(speech discrimination) 저하입니다. 여기서 어음분별력이란 귀로 들어온 소리 신호를 뇌가 정확하게 단어와 문장으로 해석해 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소리는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현상이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노인성 난청에서는 달팽이관(cochlea)의 유모세포와 청신경이 노화로 인해 서서히 퇴화합니다. 달팽이관이란 귓속에 달팽이 껍데기처럼 생긴 나선형 기관으로, 소리의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꿔 뇌로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특히 고주파수 영역이 먼저 손상되는데, 'ㅅ', 'ㅋ', 'ㅌ' 같은 자음들이 고주파수에 해당해서 가장 먼저 뭉개져 들립니다. 모음은 어느 정도 들리니 말소리가 들리기는 하는데, 정확히 무슨 단어인지 알아채기 어려워지는 겁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배성훈 교수 역시 "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노인성 난청의 핵심 특징이라고 설명합니다(출처: 한국일보). 저도 어머니와 대화하다가 갑자기 엉뚱한 대답이 돌아오는 상황을 여러 번 겪고 나서야 이게 단순한 부주의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이비인후과에서는 순음청력검사와 함께 어음청력검사를 별도로 시행합니다. 순음청력검사가 얼마나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지를 측정한다면, 어음청력검사는 실제 단어와 말소리를 얼마나 정확히 구별하는지 퍼센트로 확인합니다. 두 검사 결과가 따로 노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에, 순음청력검사 결과만 보고 '아직 괜찮다'고 판단하는 건 위험할 수 있습니다.
- 소리는 들리는데 자음 구별이 안 되는 경우 → 어음분별력 저하 의심
- 식당·카페처럼 배경 소음이 있는 환경에서 대화가 특히 어려운 경우
- TV 볼륨이 점점 커지거나, 되묻는 횟수가 늘어난 경우
- 위 증상이 하나라도 반복된다면 이비인후과 정밀 청력 검사 권장
난청이 인지기능을 갉아먹는 방식, 직접 따라가 봤습니다
일반적으로 난청은 귀의 문제이고 치매는 뇌의 문제라고 구분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관련 자료를 파고들수록 이 두 가지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경로가 여러 개인데,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된 건 '인지 부하(cognitive load)' 개념이었습니다. 인지 부하란 뇌가 어떤 과제를 처리하는 데 쏟아붓는 정신적 에너지의 총량을 말합니다.
소리가 흐릿하게 들어오면 뇌는 빈칸을 메우기 위해 쉬지 않고 추측하고 재조합하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잘 들릴 때는 듣는 데 에너지의 20% 정도만 써도 되는데, 난청이 있으면 그 비중이 훨씬 커집니다. 그러면 정작 내용을 기억하고 대화에 반응하는 데 쓸 여력이 줄어드는 겁니다. 실제로 이를 체험해보면 이 차이가 꽤 크게 느껴집니다. 뭉개진 소리로 "다음 주 화요일 오후 3시에 파란 우산을 들고 서울역 지하철 3번 출구에서 만나요"라는 문장을 듣고 나면, 내용보다 '듣는 것' 자체에 힘을 다 써버린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두 번째 경로는 사회적 고립입니다. 자꾸 되묻게 되면 대화가 피곤해지고, 모임 자체를 피하게 됩니다. 사람과의 대화는 뇌가 매일 하는 것인데, 이 자극이 줄어들면 인지기능 유지에 쓰이는 뇌 네트워크 사용량도 함께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헬렌 켈러가 "시각 상실은 우리를 사물과 갈라놓지만, 청각 상실은 우리를 사람과 갈라놓는다"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것이 남의 말을 알아 들을수 없으면 대화가 단절되고 사람과의 관계도 유지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의학 저널 란셋(The Lancet)이 2024년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난청을 치매의 수정 가능한 위험 요인 중 약 7%를 차지하는 최대 단일 요인으로 제시했습니다(출처: 인천성모병원 이비인후과 이현진 교수). 나이나 유전처럼 바꿀 수 없는 요인과 달리, 난청은 조기에 발견하면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난청이 있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치매 발병 위험이 2~5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보청기, 늦게 쓸수록 손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보청기는 거의 안 들릴 때 마지막으로 꺼내는 도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알아볼수록 그 인식이 반대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난청을 오래 방치하면 청각신경계가 소리 자극을 받지 못해 뇌의 청각 피질(auditory cortex) 기능 자체가 퇴화합니다. 청각 피질이란 뇌의 측두엽 상부에 위치한 영역으로, 귀에서 올라온 전기 신호를 소리로 인식하고 분석하는 일차 처리 기지입니다. 이 영역이 자극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나중에 보청기를 껴도 말을 알아듣는 능력 자체가 살아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청력 역치가 50dB(데시벨)을 넘으면 보청기 착용을 권고하는데, 제 경험상 이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시끄러운 곳에서 대화를 자꾸 놓치거나, 모임을 피하기 시작했다면 이미 청각 재활을 고려해야 할 시점입니다. 매일 끼지 않더라도 필요한 상황에서만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보청기를 맞추고도 '너무 시끄럽다'며 서랍 속에 넣어두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건 보청기 문제가 아니라 피팅(fitting) 조율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피팅이란 개인의 청력 주파수 패턴에 맞게 소리의 크기와 음색을 세밀하게 조절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구입 후 몇 차례 재조절 과정을 거쳐야 실생활에서 편안하게 쓸 수 있는데, 이 적응 기간을 건너뛰고 불편하다고 포기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보청기는 제품이 아니라 치료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는 말이 제게는 꽤 설득력 있게 들렸습니다.
보청기로도 해결이 어려운 고도 이상의 난청에는 인공와우(cochlear implant) 삽입 수술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인공와우란 손상된 달팽이관의 유모세포를 대신해 전기 신호로 청신경을 직접 자극하는 이식형 장치입니다. 다행히 국가 청각장애 등록 기준을 충족하면 보청기와 인공와우 모두 정부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이를 적극 활용해 보심이 좋을듯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소리는 들리는데 말귀가 어두워지면 난청인가요?
A. 일반적으로 난청은 소리가 안 들리는 것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소리는 들리는데 단어 구별이 안 되는 어음분별력 저하가 난청의 초기 신호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식당처럼 배경 소음이 있는 환경에서 대화가 급격히 어려워진다면, 이비인후과에서 순음청력검사와 어음청력검사를 함께 받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Q. 난청이 치매랑 정말 관계가 있나요?
A. 란셋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난청은 수정 가능한 치매 위험 요인 중 단일 항목으로는 가장 높은 약 7%를 차지합니다. 난청이 있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치매 발병 위험이 2~5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다만 난청만 해결한다고 치매가 완전히 예방되는 것은 아니고, 고혈압·당뇨 관리, 운동, 사회적 관계 유지 등 여러 요인을 함께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인 전략입니다.
Q. 보청기는 어느 정도 안 들릴 때 맞춰야 하나요?
A. 일반적으로 청력 역치 50dB 이상에서 보청기를 권고하지만, 수치보다는 일상의 불편함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모임을 피하기 시작하거나 대화 후 유독 피곤함을 느낀다면, 이미 청각 재활을 고려할 시점입니다. 난청을 방치할수록 뇌의 청각 피질이 퇴화해 나중에 보청기를 껴도 효과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조기 착용이 유리합니다.
Q. 보청기를 껴봤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못 쓰겠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이 경우는 보청기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피팅 조율이 덜 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청기는 구입 후 개인의 청력 주파수 패턴에 맞게 여러 차례 재조절하는 적응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불편하다고 바로 서랍에 넣어두기보다는 담당 청능사나 이비인후과에서 재조절을 받아보시는 것이 먼저입니다.
결론
저도 처음엔 TV 볼륨을 키우는 어르신을 보며 '그냥 귀가 좀 나빠진 거겠지'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어음분별력, 인지 부하, 청각 피질 퇴화까지 파고들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난청은 귀만의 문제가 아니라 뇌와 연결된 문제이고, 방치할수록 나중에 되돌리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주변 어르신 중에 자꾸 되묻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는 분이 있다면, 혼내거나 답답해하기 전에 이비인후과 청력 검사를 한번 권해보시는 게 좋습니다. 청력 검사는 가까운 이비인후과에서 간단히 받을 수 있고, 결과에 따라 보청기나 인공와우 등 적절한 재활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뇌가 소리의 기억을 아직 갖고 있을 때 움직이는 것이, 제가 이번에 가장 크게 얻은 결론입니다.
참고: 한국일보 - TV 소리 키우는 부모님… 난청 방치하면 인지기능에도 악영향 / 인천성모병원 이비인후과 이현진 교수 - 난청 방치하면 인지기능 저하, 치매 위험까지
